지난 8월 30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초·중·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은 2022년 개정된 교육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당장 내년 3월 신학기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이게 돼요.
그런데 이번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 중 유독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교과서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학력평가원(이하 학력평가원)이라는 출판사에서 제작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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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력평가원에서 제작한 한국사 1,2 검정교과서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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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난 8월부터 이 교과서의 내용, 집필 과정, 검정 과정 등을 분석해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검정 자격 조작, 타사 교과서 표절, 현직 교육부 공무원의 집필 참여 등 여러 가지 의혹이 드러났는데요.😰
이번 주 ‘타파스’는 지금까지 뉴스타파가 취재한 학력평가원 교과서 관련 의혹들을 총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이 교과서가 왜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는지, 이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서 쓰이기를 바라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지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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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평가원, 표지만 바꾼 ‘가짜 문제집’으로 검정 자격 획득?😰
먼저 우리나라의 교과서 검정 제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나 교사가 아무 책이나 교과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검정 교과서나 각 시도교육청의 인정 심사를 통과한 인정 교과서를 써야만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흔히 ‘주요 과목’이라고 불리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서는 대부분 검정 교과서를 사용하곤 합니다. 사회 과목 중 하나인 한국사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검정 교과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의 최대 관문인 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 역시 검정 교과서의 범위 안에서 출제돼요. 그만큼 검정 교과서는 엄정한 절차를 거쳐서 선정되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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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새학기부터 한국사 수업에서 쓰이게 될 검정 교과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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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뉴스타파는 최근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학력평가원이 검정 신청 자격을 조작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출판사가 역사 교과서 검정을 신청하려면, 최근 3년간 역사 관련 도서를 1권 이상 출판한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학력평가원은 지난해 7월 '한국사2 적중 340제'라는 수능 기출 문제집 한 권을 발행했을 뿐, 2010년 이후 역사 관련 도서를 발행한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지난해 학력평가원이 발행한 ‘한국사2’ 문제집 역시, 사실상 검정을 신청하기 위해 만든 가짜 문제집으로 밝혀졌어요.
학력평가원은 지난 2007년 ‘엑시트 한국근·현대사 340제’ 라는 문제집을 출판했는데요. 이 문제집과 지난해 발행한 ‘한국사2’ 문제집을 비교해 보니, 표지만 다르고 내용은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즉 2007년에 출판한 문제집을 표지만 갈아끼워서 2023년에 다시 출판한 셈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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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학력평가원의 2023년 한국사 수능 기출 문제집(왼쪽)과 2007년 한국근·현대사 문제집(오른쪽). 완전히 동일한 문제들이 실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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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뉴스타파 취재진은 2023년판 문제집의 등록 번호(ISBN)만 확인했을 뿐, 해당 문제집이 시중에서 판매된 기록은 전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즉 학력평가원이 교과서 검정 신청 자격을 갖추기 위해, 판매하지도 않을 ‘가짜 문제집’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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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공무원이 교과서 집필 참여… 이주호 장관 “문제 없다”🤔
또 학력평가원은 저작자 자격 요건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주호 현 교육부 장관의 청년보좌역인 김건호 씨가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진 거예요.🤔
교과서 검정의 주무기관인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 대상인 교과서 집필에 참여했다는 것은 심판이 직접 경기에 참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심각한 이해충돌 소지가 보이는 사건인데요.
그런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월 24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교육부 직원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도 문제가 없다’ 라며 이해충돌 소지가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습니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이 직접 저자로 활동해도 무방하다’ 라는 취지로 발언하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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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에 ‘문제가 없다’ 라고 발언하는 이주호 장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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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국토부 장관과 가까운 공무원이 부동산 개발 사업에 참여하거나, 산업부 공무원이 지원 대상 기업에 투자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해당 공무원은 감사나 수사 대상에 오르고, 장관 역시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겠죠.
그런데 이주호 장관은 오히려 ‘장관이 직접 저자로 활동해도 된다’ 라며 상식적인 이해충돌 문제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이번 교과서 검정 당시, ‘검정 실시 공고문’에 교육부 공무원의 필진 참여를 제한한다는 규정이 빠져 있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교육부는 13년 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 교과서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육부 장관을 맡고 있던 사람이 바로 현재 윤석열 정부 교육부의 이주호 장관이에요.😰
이명박 정부 이후에도 교육부는 계속 교육부 공무원의 검정 교과서 참여를 제한했습니다. 교육부 장관을 두 번이나 지내고 있는 이주호 장관이 이를 몰랐을 리 없죠. 만약 몰랐다면 장관으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이고, 알았다면 사실상 이해충돌 문제를 알고도 방치한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주호 장관은 왜 국민 상식에도 맞지 않는 해명을 내놓고 있는걸까요. 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는 왜 수많은 부적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것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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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의 부활? 이주호 “뉴라이트 잘 몰라”😰
사실 학력평가원이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기 이전부터 교육계와 언론에서는 불안한 소문이 돌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교과서 필진으로 뉴라이트 성향 저자들이 참여했다는 소문이었어요.
실제로 이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6명(교육부 공무원 김건호 씨 포함) 중 2명은 ‘사단법인 역사연구원’이라는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됐습니다. 🤔
이 단체의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얼마나 역사 교과서 문제에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과거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을 강행하다 실패한 것을 반성하면서, 검정 교과서를 통해 천천히 영향력을 넓히고자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관이 눈에 띕니다. 대표적으로 이승만 독재 체제에 대해 ‘독재’가 아닌 ‘장기집권’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고요.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서술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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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축소 서술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출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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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에 비하면 뉴라이트 색채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교육부 검정을 통과하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검정 기준을 조작하는 등 편법 행위를 저질러서라도 말이에요.😰
교육부가 의도적으로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 검정을 통과시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교육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뉴라이트 논란과 이번 검정 교과서 사태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뉴라이트 관련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뉴라이트 단체 출신 인사가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가 하면, 사상 처음으로 광복절 행사가 둘로 쪼개지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또 내년부터는 뉴라이트 의혹을 받는 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뉴라이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같은 태도입니다. 뭔가를 모르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많은 국민들이 염려하는 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공직자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닙니다.
다음주 화요일 국회에서 교육부 국정감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이날 이주호 장관과 교육부는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수 있을까요? 국민들의 감시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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