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압사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참사로 158명이 목숨을 잃었고, 334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생존자 한 명은 참사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참사 이후 약 1년 10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유가족과 생존자들에게 여전히 참사는 진행 중입니다. 이태원 참사가 대체 ‘왜’ 발생했는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제 다 끝난 일 아니냐’, ‘더 밝혀질 것이 있느냐’ 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지난 1년 10개월간 밝혀진 것은 참사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수사와 재판, 국정조사를 통해 일부 관계자들의 책임 문제는 밝혀지고 있지만, 참사의 구조적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아직 우리 사회는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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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출구 인근에서 압사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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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일,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설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태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의 시간 끌기 탓에 특조위는 4개월째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에 조사에 필요한 자료가 사라지지는 않을지, 참사의 기억이 잊혀지지는 않을지 유가족들의 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주 ‘타파스’에서는 특조위가 밝혀내야 할 이태원 참사의 ‘미규명 진실’ 중 하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로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이태원 참사의 연관성에 관한 의혹입니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경찰, 특히 용산경찰서의 참사 대응과 관련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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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경찰서는 ‘만성적 과로’ 상태였다
사실 용산 대통령실 이전과 이태원 참사의 연관성은 참사 직후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온 문제입니다. 뉴스타파는 2022년 11월 보도를 통해,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대응이 부실해졌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은 대통령실 이전과 참사의 연관성을 한사코 부인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3년 1월 국회 국정조사에 출석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참사 당일 경찰력을 동원하지 못한 이유가 대통령실 이전과 관련이 있냐’ 라는 질문에 “전혀 관련이 없다” 라고 단언하기도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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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력 동원과 대통령실 이전은 ‘전혀 관련이 없었다’ 라고 대답하는 윤희근 경찰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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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태원 참사 관련 재판, 국정조사 기록 등을 살펴보면, 대통령실 이전이 이태원 참사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 20일,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에도 왜 갑자기 집무실을 옮기는지 여러 논란이 제기됐지만, 일단 대통령이 공식 발표한 만큼 집무실 이전은 급박하게 진행됐습니다.
약 두 달 후인 5월 10일, 윤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바로 용산 대통령실에서 집무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단순히 사무 공간을 옮기는 것 이외에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경호 문제입니다.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서도 종로경찰서에서 용산경찰서로 바뀌었습니다. 대통령이 출퇴근할때마다 호위하는 경찰이 100명 이상 동원돼야 했고, 대통령실 앞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를 관리할 경찰도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용산경찰서는 대통령을 경호해본 경험도,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경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5월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경찰서는 만성적 과로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통과, 형사과 등 많은 부서들이 예년에 비해 긴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고, 자연스레 직원들의 피로도도 높아졌습니다.
지난 3월 열린 재판에서 용산경찰서 소속의 한 형사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 이후 용산서 업무가 폭증했고, 대다수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어요. 당시 용산경찰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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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경찰서가 ‘대통령 경호’에 집중한 이유는
대통령실 이전 뒤 용산경찰서에는 또 다른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경찰 인사에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인데요.
경찰 인사에서 ‘대통령실 관할 경찰서’의 위상은 특별합니다. 대통령 경호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이 승진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경찰 내부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에요. 지금까지 청와대가 위치한 종로경찰서에서 다수의 고위 경찰을 배출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반면 용산경찰서는 경찰 인사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경찰 내부에서는 용산경찰서의 위상이 갑자기 올라가게 됐어요. 용산경찰서에도 ‘대통령 경호를 잘 하면 승진할 수 있다’라는 기대감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봤듯이, 대통령실 이전 뒤 용산경찰서는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인력은 부족하고, 있는 인력들도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상황. 이런 상황에서 용산경찰서는 ‘더 중요한 일’, 즉 대통령 경호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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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경찰서는 무엇보다 ‘대통령 경호’를 최우선 업무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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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들의 발언에 따르면, 당시 용산경찰서는 다른 무엇보다 대통령 경호를 최우선 업무로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대통령실 관할 경찰서가 대통령 경호에 최선을 다하는 것 자체는 당연한 일이죠. 문제는 대통령 경호 업무 탓에 다른 업무가 소홀해졌다는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 특별수사본부 참고인 조사를 받은 김 모 용산경찰서 정보경찰관은 “집무실 이전 이후 외근 정보 활동을 잘 하지 못했다. 거의 매일 집회에 동원됐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정보 활동’이란 경찰관이 현장에 나가서 위험 요소를 파악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활동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대통령 경호(집회 관리) 업무가 과중했다는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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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경찰서, 참사 당일에도 인파 관리는 ‘뒷전’
이처럼 대통령 경호에 대부분의 인력을 집중하는 상황은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당일까지도 계속됐습니다.
2022년 10월 용산경찰서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핼러윈 종합치안대책’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대책에는 인파관리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인파관리 담당 부서인 경비과가 아무 대책을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경비과에 인파관리 대책을 세우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0월 29일 참사 당일, 용산경찰서의 모든 경비과 인력과 경비기동대는 대통령실 인근 집회·시위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당시 용산서가 핼러윈 축제 인파관리보다는 대통령 경호에 더 집중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입니다.
이날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에는 총 137명의 경찰관이 투입됐습니다. 그나마도 대부분 마약 단속, 불법 숙박업소 단속 등 업무를 맡고 있어 10만 명에 달하는 인파를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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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 직전 사고 골목의 모습. 당시 인파 관리를 위한 경찰 경비기동대는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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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경찰서 정보분석팀의 이 모 팀장은 지난해 1월 4일 참고인 조사에서 “(용산서에서는) 매주 집회가 열렸고, 전장연 시위나 대통령 출퇴근 같은 사안이 계속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용산서장이 이태원 핼러윈 데이를 업무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은 것 같다” 라고 말했습니다.
용산경찰서가 집회와 대통령 출퇴근 관리 등 업무 탓에, 이태원 참사 대응에 소홀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발언입니다.
만약 당시 용산서가 이태원 현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다면, 그래서 인파관리를 전담할 경찰관을 몇 명이라도 배치했다면 어땠을까요. 이날 세상을 떠난 158명은 지금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당시 용산경찰서는 약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도 충분한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출범할 특조위는 용산서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밝혀낼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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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달째 출범 못한 ‘이태원 특조위’... 대통령 책임 필요한 때
오늘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2022년 5월 대통령실 이전 이후, 용산경찰서는 경호 업무 등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 한편 용산서 내부에는 대통령 경호 업무를 잘 해낼 경우 승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 이런 상황에서 용산서는 인파관리와 정보 등 ‘덜 중요한’ 업무보다 대통령 경호 업무에 집중하게 됐다.
- 용산서는 이태원 참사 당시에도 대통령 경호에 집중하고 있었다. 참사 현장의 인파관리 대책도 세우지 않았고, 인파관리를 전담할 경찰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이 내용만 가지고 대통령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이 꼭 법적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겠죠. 자신의 결정이 어떤 사건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쳤다면, 이에 대해 사과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도 대통령의 역할입니다.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된지 약 두 달이 지난 7월 6일, 국회는 특조위 조사위원 9명 추천을 마쳤습니다. 이제 조사위원을 임명하기만 하면 특조위 출범이 가능하지만, 윤 대통령은 조사위원 임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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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재판에서 본 정치인의 품격, ‘수요일엔 김중배와 수작을’ 4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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