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악용한 나쁜 정치”
어제(2일) 국회에서 ‘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되자 대통령실에서 보인 반응입니다. 또 오늘은 대통령실 홍철호 정무수석이 ‘특검 수용하면 대통령 직무유기’ 라고 발언했습니다. 이상의 반응으로 봤을 때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은 거부권 행사로 굳어진 모양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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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 상병 특검법은 죽음을 악용한 나쁜 정치’ 라고 발언하는 정진석 비서실장. (출처: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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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이 특검법의 핵심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당사자인 대통령실은 거의 ‘막말’에 가까운 발언으로 특검법을 막아서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우리 사회는 수많은 죽음들을 마주했습니다. 2022년 10월에 일어났던 이태원 참사, 다음해 7월에 일어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연이어 일어난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
매번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그 때마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책임 회피에만 열중했습니다. 오히려 책임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는 모욕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진짜 ‘나쁜 정치’를 하고 있는 쪽은 어디인지 의문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번 주 ‘타파스’에서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지난해 5월 1일 노동절,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인 한 건설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죽음,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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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갈취·실직 만연한 건설 현장… 노조는 ‘보호막’이었다
지난 2015년, 마흔 두 살 나이에 건설 일을 시작한 양회동 씨. 쌍둥이 남매의 아빠인 양 씨는 건설 일을 시작한지 3년만에 ‘반장’직을 맡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가족과 동료들은 그런 양 씨를 ‘착하고 부드러운,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양 씨가 겪은 노동 환경은 몹시 열악했습니다. 임금이 밀리는 일은 다반사였고, 중간 관리자에게 임금을 떼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임금을 떼였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오지 마라’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니까요.
이런 현실은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노조와 건설사의 협약에 따라 고용이 보장됐고, 임금이 떼이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양회동 씨의 부인 김선희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걸(노조 활동) 시작으로 경제적인 안정도 찾았고 아이들이랑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됐고… ‘이렇게만, 앞으로 우리 가족 이렇게 하면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 만족했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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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회동 씨에게 노조 활동은 가족의 미래였고, 자랑이자 자부심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더 많은 동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에 노조 간부 역할도 맡게 됐습니다.
건설노조 간부가 된 양 씨는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건설사 측 관계자들도 ‘양회동 씨가 노사 관계의 다리 역할을 해줬다’ 라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동료를 가족처럼 챙기던 사람’, ‘모든 걸 내어주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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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는 ‘건폭’이 됐다
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 현장에서 강성 기득권 노조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라며 건설노조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이 때 나온 말이 바로 ‘건폭’이라는 신조어입니다. 건설 노동자들을 사실상 조직폭력배로 치부한 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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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2월 윤석열 대통령은 ‘건폭’ 수사단을 출범시켜 건설노조 수사를 촉구했습니다. (출처: 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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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발언과 함께 경찰·검찰·국토부·노동부 등 4개 부처는 대대적인 건설노조 수사에 나섰습니다. 수많은 노조 간부들이 수사와 구속 대상에 올랐습니다. 양회동 씨 역시 ‘공동공갈죄’ 라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게 됐습니다.
경찰이 양 씨에게 씌운 혐의는 쉽게 말해 건설사들을 협박해 돈을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양 씨는 건설노조 간부이자 현장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런 사실은 건설사 관계자들의 반응에서도 드러납니다. 경찰은 양회동 씨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4곳의 ‘피해 업체’를 적시했는데, 이 4개 건설사 중 2곳의 현장소장은 양 씨에 대한 처벌을 막아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한 현장소장은 오히려 ‘경찰이 소설을 썼다’ 라며 경찰 수사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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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적시한 ‘피해 업체’ 중 한 곳의 현장소장은 ‘경찰이 소설을 썼다’ 라며 수사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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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경찰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양회동 씨를 여러 차례 수사한 끝에 2023년 4월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양 씨는 자신이 폭력배, 협박범으로 몰린 것에 대해 심한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두 아이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되었다는 생각에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5월 1일, 양 씨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 기일이 다가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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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분신 방조’ 보도로 고인 모욕… 원희룡도 동참
노동절이었던 이날, 건설 노동자 양회동 씨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양 씨가 남긴 유서에는 "떳떳하게 노조 활동을 했는데 정말 억울하다", "건설노조 탄압을 멈춰달라" 라는 절규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양회동 씨의 분신 이후, 각 언론들은 일제히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경찰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으로 치부한 윤 대통령 역시 비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양회동 씨의 죽음을 다룬 기사들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일보의 5월 16일자 보도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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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회동 씨 ‘분신 방조’ 의혹을 보도한 조선일보 기사. (출처: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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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선일보 인터넷판에는 ‘건설노조원 분신 순간, 함께 있던 간부는 막지도 불을 끄지도 않았다’ 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양회동 씨의 분신 당시, 현장에 있던 건설노조 간부 홍성헌 씨가 분신을 방조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기사가 보도된 이후 보수 정치인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홍성헌 씨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자신의 SNS에 “동료의 죽음을 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려 했던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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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보도 다음 날, 원희룡 당시 국토부 장관은 ‘기획 분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출처: 원희룡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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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건설노조 간부인 홍성헌 씨가, 투쟁에 활용할 목적으로 동료의 죽음을 기획·방조했다는 주장입니다. 심지어 한 보수 단체는 홍성헌 씨를 자살방조 혐의로 고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간 홍 씨는 세상의 눈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홍성헌 씨가 비로소 세상에 다시 나올 수 있게 된 것은, 올해 3월 경찰이 홍 씨를 무혐의 처분한 이후였습니다.
결국 조선일보와 원희룡 장관, 보수 단체들은 사실과 다른 말로 고인과 고인의 동료를 모욕한 것입니다. 대통령실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을 악용한 나쁜 정치’를 한 셈이죠. 그러나 홍성헌 씨에게 사과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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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분신 방조’ 기사 피해자 홍성헌 씨. 그는 조선일보 기자를 비롯해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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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악용한 나쁜 정치’는 누가 하고 있나
양회동 씨가 세상을 떠난 뒤 1년, 아내 김선희 씨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최근 들어 김선희 씨는 자신을 언론에 노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김 씨는 “남겨진 아이들이 아빠의 무죄를 알게 해주고 싶다”, “그래야 아이들이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고 답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했던 노동자 양회동 씨. 동료의 어려움을 못본 체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건폭’이라는 꼬리표였습니다.
경찰은 이 꼬리표를 따라 수사를 시작했고, 무리한 혐의를 씌워 양 씨를 구속하려 했습니다. 양 씨의 분신 이후에도 조선일보와 보수 단체, 정치인들은 거짓말로 고인을 모욕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가족과 동료들의 고통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요. ‘죽음을 악용한 나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의 사과와 책임이야말로, 양회동 씨의 억울함을 풀고 그의 가족들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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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제3지대장을 맡았던, 양회동 씨의 생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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