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은 이렇게 외치며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많게는 20년 이상,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을 떠받쳐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평생을 배 만드는 일에 바친 대가로 받는 임금은 월 200만 원 수준. 조선업계 불황을 이유로 수 차례 임금을 깎은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다시 호황이 찾아와도 이들의 임금은 그대로였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 라는 생각에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스스로를 1미터짜리 철창에 가두고 나갈 길을 용접해 막아버렸습니다.
▲ 지난 7월 파업 당시, 철창 속에서 농성 중인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유최안 씨. (출처 : 연합뉴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싸늘했습니다. 정부 고위 인사들은 ‘불법 파업에 엄정 대응하겠다’ 라며 연일 공권력 투입 가능성을 드러냈고, 윤석열 대통령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라며 협박성 발언을 내뱉었습니다.
결국 노동자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업 51일만에 노사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합의한 인상안(4.5%)은 삭감되기 전 임금에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100일간의 성과로 ‘대우조선해양 노사합의 유도’를 내세우며 자화자찬했습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며 시작된 파업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파업의 경과를 매일같이 보도하던 언론들도 노사 합의 이후로는 관심이 식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지금도 국회와 조선소에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왜 다시 싸움에 나섰을까요. 이번 주 ‘타파스’는 다시 한 번 거리로 나선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합의 이행은 한 달 넘게 제자리, 노동탄압은 ‘착착’
지난 7월 22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와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협의회가 합의를 맺으면서 파업이 마무리됐습니다. 주요 합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임금 4.5%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폐업 하청업체 소속 조합원 46명 고용승계
하지만 한 달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이 합의 내용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고용승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요. 이 문제를 알아보려면 먼저 대우해양조선의 인력 구조를 살펴봐야 해요.🤔
원청인 대우해양조선은 조선소 내에 약 100개의 사내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고, 이 하청업체들은 원청이 지급하는 ‘기성금’을 받고 이 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는 구조입니다. 따라서 하청업체가 폐업할 경우, 그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들도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 폐업한 하청업체 4곳의 노동자 46명을 다른 하청업체에서 재고용하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된 요구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46명 중 단 3명만이 재고용됐을 뿐, 나머지 42명(1명은 자진 포기)은 계속 실직 상태에 놓여 있어요. 게다가 하청노조 측은 ‘어떤 업체의 경우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만 빼고 고용했다’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청업체들이 노조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용승계를 미루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에요.🤨
또 대우조선해양 측은 파업으로 인해 회사 운영에 피해를 입었다며, 대형 로펌을 동원해 파업 노동자들에게 47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월 200만 원 수준에 불과한 임금으로 이 돈을 갚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요.😰
갚을 능력이 없음을 뻔히 아는데도 굳이 수백억 원대 소송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청노조는 ‘노조를 탈퇴하거나 회사를 나가면 소송 대상에서 빼주겠다는 탄압이 곧 들어올 것’이라며 손해배상 소송이 ‘노동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진짜 책임자는 원청과 산업은행
앞서 말씀드렸듯이 대우조선해양은 수많은 하청업체를 거느리고 있고, 많은 노동자들이 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노동자들은 하청업체에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하청업체는 원청(대우조선해양)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 문제를 누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까요? 하청노조 측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진짜 책임자라고 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왜 노조는 산업은행이 책임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겉으로 봤을 때 대우조선해양은 평범한 민간 기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대우조선해양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약 5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에 막대한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경영진 임명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어요. 사실상 정부의 관리를 받는 공기업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래서 대우조선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정부는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쏟아부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조선의 경영 상황은 나아질 줄 몰랐어요. 최근 10년간 대우조선해양의 누적 적자는 7조 7천억 원에 달했어요. 경영과 관리 측면에서 완전히 실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패의 책임은 고스란히 하청 노동자들에게 넘어갔습니다. 2014년부터 하청 노동자의 약 70%가 해고당했고, 남아있는 노동자들도 약 30%의 임금이 삭감됐어요. “이대로 살 수 없다” 라는 노동자들의 외침은, 결국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책임 회피 탓에 나왔던 것입니다.
다시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은 지난 8월 18일부터 여의도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대우조선해양 본사가 있는 경남 거제에서도 시위를 열고 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 ‘노사 합의사항을 이행하라’ 라는 것입니다.
▲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중인 김형수 하청노조 지회장.
최초 요구안보다 한참 후퇴한 합의였지만,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합의를 지켜야 할 사측은 책임을 떠넘기기 바쁘고, 약속을 지키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오히려 수백억 원대 손해배상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수 조 원의 적자가 나도 경영과 관리를 맡은 책임자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십년 간 배를 만들어온 노동자들만 쫓겨나고, 협박당하고, 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것이 과연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의 모습일까요. 어쩌면 대우조선해양은 앞으로 이 정부에서 일어날 수많은 싸움의 ‘예고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27일(토)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숨겨온 지난 100년의 역사를 추적한 다큐영화 ‘족벌-스페셜에디션’ 상영과 gv가 있었습니다. ‘족벌-스페셜에디션’은 뉴스타파필름이 지난 2020년 제작한 ‘족벌’을 105분으로 줄이고 새로운 내용을 추가한 새 작품입니다.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에서 김용진 감독은 ‘족벌언론이라는 악화를 독립언론이라는 양화로 구축해야한다’고 말하며 독립언론을 향한 시민들의 지지와 응원을 당부했습니다.
뉴스타파필름과 뉴스타파는 새롭게 만든 작품을 들고 뉴스타파 회원 여러분을 찾아갈 계획입니다. 많은 기대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