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아주 중요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 요즘은 학력 등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이 확대되는 추세지만, 그럼에도 학력은 취업과 승진 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곤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더 나은 학력을 획득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무한히 경쟁합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거친 청년들이 ‘공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 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 몰라요.
뉴스타파는 지난 5월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 장녀의 ‘허위 스펙 쌓기’ 의혹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한 장관의 장녀 한 모 양이 타인의 자료를 무단으로 베껴 전자책을 발간하고, ‘약탈적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등 부정 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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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청문회에서 질의를 받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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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의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꽤 치명적인 논란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한동훈 후보자는 무사히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 자리에 오르게 됐죠. 이후 한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실질적인 2인자로 불리며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한 장관의 장녀뿐 아니라 조카 등 열 명 이상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허위 스펙 네트워크’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뉴스타파는 미국 산호세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집단을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라고 이름붙였어요. 이번 주 타파스는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의 실체, 그리고 우리나라 특권층의 학력 대물림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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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 드러나다
산호세(San Jose)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입니다. 첨단 IT산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의 수도로 불리는 곳이기도 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계 이주민들이 많은 도시이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거주민들의 학력도 높고 자녀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기로도 유명합니다.
‘산호세 허위 스펙 네트워크’는 한동훈 장관의 장녀와 처조카 3명, 그리고 산호세 지역을 비롯해 미국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 10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을 잇는 핵심 연결고리는 바로 ‘논문’이에요. 이 14명의 학생들은 총 25개의 논문을 작성하고 서로의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논문으로 연결된 14명의 관계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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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명의 학생 중 한동훈 장관의 조카 최 모 양이 10건으로 가장 많은 논문을 썼고, 한 장관의 장녀 한 모 양은 가장 많은 단독 논문(7건)을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단순히 학술 활동에 적극적인 학생들의 모임으로 보이기도 하는데요. 문제는 이 논문들 중 상당수가 표절과 ‘약탈적 학술지’ 게재 등 부정 행위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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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검사 프로그램만 피하면 된다? ‘교활한 표절’🤔
보통 논문의 표절 여부를 판단할 때는 표절 검사 프로그램을 이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표절 검사 프로그램은 5~7개 단어가 연속으로 중복되어야만 ‘표절’로 판단하기 때문에, 몇몇 단어를 바꾸거나 문장 구조만 변환하면 표절 검사를 피할 수 있어요. ‘산호세 네트워크’ 학생들이 쓴 논문에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표절한 문장이 상당수 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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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볼까요? 위의 예를 보면, 원본 문장과 표절 논문에 실린 문장은 수동태, 능동태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같은 문장입니다. 하지만 문장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단하죠. 이런 표절 방식은 의도적으로 표절 검사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교활한(sneaky) 표절이라고 불립니다. ‘산호세 네트워크’ 학생들의 논문 25건 중 8건에서 이 ‘교활한 표절’이 확인되었어요.😨
또 학생들이 작성한 연구 논문에는 통계의 표본 숫자를 변경하는 등 데이터 조작 사례들도 5건 발견됐습니다. 산호세 네트워크 학생들로부터 ‘논문 표절’ 피해를 당한 이상원 뉴멕시코주립대 교수는 “(학생들이)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며 “표절을 넘어선 조작”이라는 말을 남겼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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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 네트워크’ 학생 논문 25건 중 20건, ‘약탈적 학술지’ 게재🤨
원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는 동료 연구자들과 심사위원들의 엄격한 평가를 거쳐야만 합니다. 그런데 평가 제도가 부실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고, 돈만 주면 논문을 실어주는 학술지를 학계에서는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s)’라고 부르고 있어요.
‘산호세 네트워크’ 학생들의 논문 25건 중 20건이 바로 이 ‘약탈적 학술지’에 게재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약탈적 학술지는 ‘불량 논문’을 양산하고 학문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학계에서는 논문 투고 자체를 금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편당 수십에서 백수십 달러의 투고료를 내면서 논문을 게재했어요.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논문 25건 중 17건이 한동훈 장관의 청문회 이후 삭제되었는데요. 이미 게재된 논문을 삭제하는 데는 최소 300달러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생들이 과연 자신의 판단으로 논문을 투고하고 삭제한 것인지, 혹은 학부모와 어른들의 개입이 있었던 것인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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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수준이므로 잘못이 아니다’... 부끄러운 어른들의 해명😰
아직까지 ‘산호세 네트워크’ 학생들의 논문 표절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부모가 시킨 것일수도 있고, 학생들이 스스로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일수도 있죠. 하지만 이미 잘못된 방식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어른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학생들이 더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가르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동훈 장관을 비롯한 어른들은 오히려 잘못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장녀 관련 의혹에 대해 “습작 수준의 글을 올린 것을 가지고 문제삼는 것은 과하다” 라고 해명했는데요. 학계에서는 글의 수준을 떠나, ‘교활한 표절’과 ‘약탈적 학술지 게재’ 라는 잘못된 방법을 택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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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청문회에서 장녀의 '허위 스펙 논란'에 대해 해명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당시 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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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동훈 장관의 처조카인 진 모 군은 뉴욕 타임스의 기사를 그대로 베껴 온라인 학술지 ‘Journal of AI Applications(JAA)’에 싣기도 했는데요. 진 모 군의 보호자 측은 뉴스타파의 질의에 “JAA 저널을 생전 처음 들어보았고, 만약 저널에 공식 출간된 증거가 있다면 그것은 무단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고등학생인 진 모 군이 쓴 글을 누군가가 무단으로 도용해, 진 모 군의 이름으로 온라인 저널에 게시했다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온라인 저널에 글이 실리는 것 자체가 저자에게는 이득이기 때문에,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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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층 자녀들의 편법적인 스펙 쌓기, 이대로 괜찮을까
몇 년 전 방영했던 <SKY 캐슬>이라는 드라마 기억하시나요? 국내 최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상류층 부모들과 그 자녀들이 벌이는 사투(?)를 그린 드라마였는데요.
<SKY 캐슬>은 방영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학력을 대물림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조금 과장되긴 했어도)우리나라 상류층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뉴스타파는 지난 2019년, 나경원 전 의원과 대학 교수, 중견기업 오너 등 특권층 자녀들로 구성된 ‘스펙 네트워크’를 보도했습니다. 이들은 1년에 수천만 원을 들여 신문을 발행하는가 하면, 직접 발간한 책에 국회의원이 추천사를 써주는 등 ‘특별한’ 스펙을 쌓아 왔어요. 결국 이 학생들 중 상당수가 하버드, 예일 등 미국 유명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처럼 상류층 부모들이 자신의 인맥과 자산을 동원해 자녀에게 학력을 대물림하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부모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라는 태도만 보이고 있죠.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겠다’ 라는 윤석열 정부의 약속과는 다소 거리가 먼 모습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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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기사로 한 입에 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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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희 “언론 판갈이 필요, ‘뉴스쿨’이 돌파구”
“언론 개혁은 이제 끝난 거 아닌가라고 좌절하거나 절망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기존의 언론 개혁론이라고 하는 건 언론을 국가나 제도의 힘으로 좀 바꿔보자라고 하는 쪽에 좀 더 가까운 것들이었어요. 그건 이제 불가능하거나 어려웠졌을 뿐더러 실제로 굉장히 부분적인 일입니다. (언론)판을 갈아야 합니다”
한국언론의 문제를 비판적 분석해온 미디어 전문가 정준희 교수는 한국 언론의 문제를 “(콘텐츠의) 질로 승부하지 못하는 데 있다”라고 진단하며 “클릭 유도로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 모델’과 ‘권력과 결탁해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언론구조’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기존 모델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언론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시대, 정준희 교수를 만나 한국 언론의 생태계를 바꿔나갈 방안과 함께 뉴스타파가 진행하고 있는 저널리즘스쿨(뉴스쿨) 및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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