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그 날로부터 10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습니다. 참사 직후부터 검경합동수사본부를 꾸려 수사를 시작했고,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가 잇달아 진행됐습니다.
2015년에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고, 선체가 인양된 2017년에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2018년부터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조사를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뉴스타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침몰 원인이 규명됐다’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전체 국민 중 36.4%에 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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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설문 결과,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규명됐다고 생각하는 국민 비율은 36.4%에 불과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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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국민 다수의 생각대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10년의 시간동안 진상 규명에 실패한 것일까요.
이번 주 ‘타파스’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제는 알게 된 것들'과 지난 10년간의 진상 규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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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날, 세월호는 왜 쓰러졌나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2012년 일본에서 들여온 18년 된 중고선이었습니다. 원래 중고선은 최대 선령(배의 나이)이 20년까지 허용됐지만, 마침 정부가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완화한 덕에 세월호를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즉 참사 시점(2014년)에는 이미 기존의 선령 제한을 꽉 채운 상태였던 것이죠.
세월호는 선령이 오래된 만큼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하는 배였습니다. 하지만 청해진해운과 선원들은 이와 반대로 행동했어요. 기존보다 승객과 화물을 더 많이 싣게 만들고, 실소유주 유병언 회장을 위한 전시실도 증축했습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안 그래도 나이가 들어 관절이 아픈 사람에게 수십 kg의 짐을 더 얹어준 셈이었죠. 심지어 화물이 제대로 고정되지도 않아서 배가 기울어지면 한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컸습니다. 참사 전날인 2014년 4월 15일, 세월호는 이렇게 위태로운 상태로 인천항을 출발했습니다.
다음날인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진도 앞바다를 지나던 세월호는 조타장치 고장으로 급격하게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합니다. 정상적인 배라면 어느 정도 기울어져도 다시 균형을 회복했겠지만, 이미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태였던 세월호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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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6일 오전 9시 34분경, 좌측으로 쓰러져 있는 세월호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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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의 목숨은 왜 구출되지 못했나
영화 <타이타닉>에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도중에도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만약 세월호 선원들이 타이타닉호처럼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적어도 수십 명의 승객들은 더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세월호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밖으로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라는 말만 남긴 채 먼저 배를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배를 책임져야 할 이준석 선장도 9시 40분경 속옷 바람으로 배를 탈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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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에 승객들을 남겨둔 채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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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구조에 나섰던 해경 역시 총체적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했습니다. 세월호에 가장 먼저 접근한 해경 123정은 이준석 선장 등 10여 명의 선원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세월호 내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 수십 분의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당시 해경 지휘부 역시 적절한 지시를 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였습니다. 만약 당시 해경이 재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승객들이 탈출하도록 도왔다면 어땠을까요.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경은 여객선 침몰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해경은 국민들의 목숨을 구할 능력도, 책임감도 없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넘어가자 세월호는 더 급격히 기울기 시작합니다. 주변 어선들이 달려들어 필사적으로 승객들을 구해냈지만, 이미 가라앉기 시작한 세월호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세월호는 300여 명의 승객과 함께 물 속으로 가라앉고 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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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의 방해로 굴절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상황은 모두 지난 10년간의 진상 규명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상의 사실에서 추론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월호는 불법 개조, 과적으로 인해 작은 결함에도 쓰러질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다.
- 승객을 먼저 구해야 할 선원들은 승객을 방치한 채 도망쳤다.
- 구조에 나선 해경은 무능하고 무책임했다.
결국 세월호 참사는 안전 규제를 완화해준 정부, 불법 증축과 과적 운항을 강행했던 청해진해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난 선장과 선원들, 승객들을 구조할 능력도 책임감도 없었던 해경 등등 수많은 원인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사의 원인을 조목조목 분석하고, 사법적 절차에 따라 책임자를 처벌하고, 미흡했던 시스템을 정비해서 참사 이전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하겠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노골적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방해했습니다. 2015년 1월부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미처 특조위가 자리를 잡기 전부터 여당 측은 “특조위는 세금도둑” 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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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월, 국회에서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라고 발언하는 김재원 당시 새누리당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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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화답하듯 정부는 특조위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조사 진행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방해 공작을 펼쳤습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과 국민들의 염원으로 출범한 세월호 특조위를 2016년 강제 해산했습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진상규명 활동을 가로막자, ‘정부가 더 큰 음모를 숨기고 있다’ 라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세월호 침몰 원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당시 정부의 방해와 음모론의 확산 탓이 큽니다. 자극적인 음모론이 난무하는 가운데 ‘더 안전한 사회’라는 목표는 점점 희미해져 갔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최대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린 법안은 참사 이후 최대 선령 25년으로 조정되는 데 그쳤습니다. 그나마도 화물을 싣지 않는 ‘연안여객전용 여객선’은 최대 선령 30년으로 기존과 동일합니다.
2020년 기사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여객선 사고는 줄지 않아 총 274건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세월호 참사 이전보다 더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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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참사…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야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그동안 우리 사회는 수많은 참사를 겪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주목합니다. 참사 이후 정부·여당의 대응 등이 놀랍도록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역시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참사 초기부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요구로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됐음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과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에 조심스레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당시 정부가 진상 규명을 방해한 탓에 ‘더 안전한 사회’라는 목표가 흐려졌던 것처럼, 이태원 참사 역시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22대 총선이 여당의 ‘참패’로 끝난 이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다시 한 번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달려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바뀔 수 있을까요. 만약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이번에야말로 우리 사회는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정치인이든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이 부디 이 ‘의무’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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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시작한 뉴스쿨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3곳의 독립언론사가 탄생했습니다. 인천경기지역 탐사보도 매체 <뉴스하다>, 미디어 감시 전문 매체 <뉴스어디>, 재판 감시 매체 <코트워치> 등입니다. 뉴스쿨 2기 펠로우 단계로 현재 뉴스타파 뉴스룸에서 수련 중인 교육생들도 올해 ‘기후위기 전문 매체’와 ‘금융 감시 매체’ 창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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