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의 끝자락, 고속도로와 이어지는 길. 이 곳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면 두 개의 거대한 빌딩이 금새 눈에 들어옵니다. 빌딩 꼭대기에는 각각 익숙한 로고가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현대와 기아, 두 자동차 기업을 아우르는 현대자동차그룹의 본사 빌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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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3위를 기록했고, 올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죠.
한편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업체, 가맹점 등에 쏟아붓는 ‘갑질’로 악명 높은 대기업이기도 합니다.🤔 뉴스타파도 그동안 불법 파견, 하도급 갑질, 일방적인 계약 해지 등 현대차의 각종 갑질 사례를 보도하기도 했어요.
이번 주 타파스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 현대차의 어두운 면을 다시 한 번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오늘 들려드릴 이야기는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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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옷 청년들’에게 점령당한 현대차 본사 앞🤨
위에서 말씀드린 현대차의 ‘갑질’에 맞서 10년째 싸우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현대차그룹 해고 노동자 박미희 씨입니다. 박미희 씨는 2013년 기아차 대리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중, 대리점의 부당판매 비리를 내부고발한 뒤 해고됐습니다.😰 이후 박 씨는 현대차 본사 앞에서 10년째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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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박미희 씨(가장 왼쪽)와 동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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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씨가 시위를 하고 있는 장소는 광장이나 인도가 아닌, 도로 한복판 안전지대입니다. 안전지대라고는 하지만 바로 옆으로 차량이 지나다니는 위험한 공간이죠.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에서 박미희 씨와 동료들은 집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박미희 씨는 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걸까요? 그 이유는 바로, 검은 옷을 입은 수십 명의 청년들이 이미 인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로 보이는 이 ‘검은 옷 청년들’은, 어깨띠를 두르고 팻말과 현수막을 든 채 현대차 본사 앞을 묵묵히 지키고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인도와 차도 양 쪽에서 각각 현대차에 시위를 하고 있는듯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검은 옷 청년들은 바로 현대차가 고용한 경비 용역이었어요.🤔 이들은 왜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서 있는걸까요? 그리고 현대차가 경비 용역을 동원해 본사 앞 인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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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박미희 씨(가장 왼쪽)와 동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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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집회’에 24시간 동원… 현대차 용역 직원의 고백😰
뉴스타파 취재진이 현대차 앞 현장을 취재하던 중, ‘검은 옷 청년’ 중 한 명인 A씨가 조심스레 뉴스타파를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본업이 경호원이라고 밝힌 A씨는, “자괴감이 많이 든다. 진짜 거기(현대차)는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라며 말을 시작했습니다.
A씨는 자신이 현대차 본사 앞에서 했던 주요 업무가 ‘집회 명목으로 24시간 현대차를 지키는 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A씨는 한 경비 업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현대차에서 이 업체를 동원해 ‘가짜 집회’를 열고 있다는 말이었죠.🤔
A씨의 말에 따르면, 구체적인 업무 절차는 이렇습니다. 먼저 현대차 보안팀에서 본사 앞 지역에 집회 신고를 냅니다. 그 다음 용역 업체가 현대차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을 배치하고, A씨 같은 직원들은 2시간동안 집회 현장을 지키고 2시간 쉬는 일을 24시간 반복합니다.
이야기 도중 A씨는 ‘저희(직원들)는 지시를 내리면 하는 사람들이다. 집회 현장이라는 것만 듣고 왔다’ 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나온 집회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 ‘가짜 집회’는 말 그대로 24시간, 눈이 오든 비가 오든 폭염이 쏟아지든 계속됐습니다. A씨는 ‘도중에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다’ 라며 ‘정신이 피폐해지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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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오는 날, 용역 업체 직원이 우산을 쓰고 현대차 사옥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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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0억 원 이상… ‘집회 방해’에 거금 쏟아붓는 현대차🤨
A씨는 또 ‘집회 일은 여기 하나 뿐이다’ 라며, 경비·경호 업무가 아닌 집회에 용역업체를 부르는 대기업은 현대차가 유일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현대차가 경비 용역을 동원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수십 명에 달하는 용역 직원들을 24시간 계속 동원하고 있으니, 대충 계산해도 1년에 약 10억 원이 넘는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현대차는 대체 왜 이렇게 큰 돈을 써가면서 ‘가짜 집회’를 열고 있는걸까요? 그 이유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의 관행을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현행 집시법상 집회를 열기 전에는 경찰에 집회 장소를 신고해야 하는데, 같은 장소에 여러 개의 집회가 신고됐을 경우에는 경찰이 참가자 수가 더 많은 집회에 우선권을 주는 관행이 있습니다.
즉 현대차가 먼저 대량의 인원을 동원해서 집회 신고를 하면, 박미희 씨 같은 비교적 소규모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장소 바깥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게다가 현대차는 집회를 신고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을 허위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의 행정 관행을 이용해 일종의 ‘집회 방해’ 공작을 펼친 것이죠.
놀랍게도 현대차의 경비 용역을 동원한 가짜 집회는 13년 전인 2010년부터 시작됐습니다. 박미희 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현대차에 맞섰던 시위자, 집회 참가자들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집회의 권리를 방해받아 왔어요.
실제로 2018년 서울중앙지법은 현대차의 가짜 집회가 ‘타인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라고 판시했습니다. 인권위 역시 2021년 박미희 씨가 낸 진정에 대해 ‘경찰이 박미희 씨의 집회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라며 경찰의 무책임을 지적하기도 했어요.
그러나 현대차와 경찰 모두 이러한 지적에 철저한 무시로 답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현대차 본사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경비 용역들이 ‘가짜 집회’에 동원돼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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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민간인 시위자·기자 ‘사찰팀’ 운영😰
그런데 A씨의 말에 따르면, A씨를 비롯한 경비 직원들의 임무는 단순히 가짜 집회에 참여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일명 ‘순찰자’ 라고 불리는 일부 직원들은 박미희 씨와 집회 참가자들을 미행하고, 일거수일투족을 현대차 측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해요. 사실상 현대차에서 경비 용역을 동원해 민간인 사찰팀을 운영한 것입니다.😰
과거 삼성그룹의 경우 직원들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미행한 것이 발각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CJ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혐의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습니다. 만약 A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대차 역시 조직적인 범죄 행위를 지시한 셈이죠. 또 A씨는 ‘사찰팀’이 현대차로부터 기자들의 개인정보를 건네받아 관리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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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현대차 경비 용역업체 직원 A씨(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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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A씨는 ‘저희가 시위하고 집회하려고 경호원이 된 건 아니다’ 라며 자괴감을 호소했습니다. 경호원은 말 그대로 중요 인물이나 행사를 경호하기 위한 전문 인력인데, 현대차는 시위자를 막기 위해 자신들을 동원할 뿐이라는 것이죠.
현대차 본사 앞, 검은 옷의 용역 직원들이 든 팻말에는 ‘노사관계 선진화로 기업 경쟁력 강화’ 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가짜 집회용 팻말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는 현대차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고 있는 말이겠죠.🤔
하지만 매년 거액의 돈을 들여 용역 업체를 동원하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의 권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심지어 사찰과 미행까지 지시하는 행태가 과연 ‘선진화’에 걸맞는 모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사회적 논란을 고려하면 ‘기업 경쟁력’ 역시 높아질지 의문이에요.🤔 세계적 위상에 걸맞는 기업문화,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갖춘 현대차가 되길 바라며 이번 주 '타파스'를 마무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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