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9일, 핼러윈데이를 앞둔 밤. 서울 이태원역 인근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오랜만에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 다른 일을 마치고 이태원에 잠깐 들린 사람들,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려는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지만, 어째서인지 그날 경찰은 예년과 다르게 인파를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무정차 통과를 했을 이태원역에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들었습니다.
이태원역 1번출구 인근, 해밀턴호텔 옆 골목길은 어느 순간부터 내려오는 사람들과 올라가는 사람들이 뒤엉켜 꼼짝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가슴과 배가 짓눌려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다급한 목소리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습니다. “압사 당할 것 같아요”, “이러다가 대형 사고 나게 생겼어요”... 그러나 경찰은 오지 않았습니다.
|
|
|
▲이태원역 1번 출구. 작년 10월 29일 하루에만 13만여 명이 이 역을 이용했습니다. |
|
|
그날 밤, 그 좁은 골목길에서 15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끔찍한 참사 앞에서 시민 안전을 책임졌어야 할 사람들은 “미리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바빴습니다. 분노하고 절망한 유가족들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참사로부터 1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경찰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가 수사 결과를 내놓았고, 국회에서도 국정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여전히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라고 말합니다. 지난 100일간 우리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 규명에 얼마나 다가갔을까요. 이번 주 타파스는 이태원 참사 이후 진상 규명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
|
|
‘이상민, 윤희근 무혐의’... 한계 드러낸 경찰 특수본 수사😥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사회가 지난 100일간 ‘공식적으로’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고 했던 시도는 두 번 있었어요. 경찰 특수본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 먼저 경찰 특수본 수사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경찰 특수본 수사는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참사 당시 112 신고 기록과 경찰 상황실의 대응 등을 통해 경찰이 상황 대처에 소홀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났는데요. 과연 경찰이 같은 경찰의 실책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수사 내내 제기됐습니다. 이런 의문에 대해 특수본은 ‘수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요.
결국 경찰 특수본은 올해 1월, 출범 74일만에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경찰·소방·지자체 관계자 23명을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이들 23명에 대해서는 비로소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무책임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등은 끝내 법적 책임을 면하게 됐어요. 유가족들은 이와 같은 수사 결과에 대해 ‘꼬리자르기 수사’ 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
|
|
▲경찰 특수본 수사에 대해 불신을 표하는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 |
|
|
이런 결과를 두고 ‘수사 결과 무혐의가 나왔으니 이상민 장관에겐 아무 책임이 없는 것 아니냐’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인(公人)이 져야 할 책임이 반드시 법적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죠. 참사 직후 무책임한 발언으로 유가족들의 마음을 찢어지게 만든 것,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실과 다른 발언을 일삼은 것은 마땅히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일입니다.
게다가 특수본 수사에서는 무혐의가 나왔지만 이상민 장관의 법적 책임 역시 아직 다퉈볼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당장의 법적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다른 책임까지 방기하겠다는 것은 공인으로서, 정부 부처를 책임지는 장관으로서 심각한 결격 사유가 아닐까요.🤔 |
|
|
여당 반대로 한 달 허비한 국정조사… 자료 제출도 부실🤔
국회 국정조사 역시 시작하기 전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경찰 수사 결과가 먼저” 라며 국정조사 참여 자체를 거부했고, 예산안 처리와 관련해 국정조사를 마치 정치적 ‘카드’ 처럼 쓰는 모습도 보였어요. 결국 여당의 반발 끝에 총 55일간(초기 45일에서 10일 연장)의 국정조사 기간 중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허비됐습니다.😡
물론 국정조사가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작년 11월, 용산 대통령실에 경찰력이 집중돼서 참사 현장 대응이 부실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는데요.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이임재 용산경찰서장 등의 발언을 통해 일부 밝혀졌습니다. 또 정부의 마약 단속 정책이 참사 당시 경찰 배치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드러났어요.
|
|
|
▲2022년 7월부터 마약 단속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증언하는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
|
|
하지만 결국 국정조사는 결정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난 1월 17일 종료됐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조사 기간이 워낙 짧기도 했지만, 조사할 수 있는 자료 자체도 턱없이 부족했다고 해요. 당시 조사 대상 기관들이 ‘특수본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자료 제출에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협조적인 태도는 9년 전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당시와 비교해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014년 6월부터 90일간 진행됐던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때는 조사 대상 기관이었던 해경이 채증 영상과 무전 교신 기록, 통화 녹음 파일 등 모든 자료를 제출했어요. 관련 기관들의 협조 수준이 9년 전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셈입니다.😰 |
|
|
세월호 때는 있었던 대통령실 녹음 파일, 지금은 ‘녹음 기능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아마 ‘자료’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알고 계실거예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당시 해경은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대부분 조사 기관에 제출했는데요. 이 자료들은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 구조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사고 예방을 위해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공개됐던 가장 중요한 자료 중 하나가 바로 해경과 대통령실의 핫라인 통화 기록이었어요. 이 기록은 당시 대통령실이 어떻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지, 대통령실이 참사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
|
|
▲세월호 참사 당시, 배가 완전히 뒤집어진 상황에서도 대통령실은 ‘대통령 메시지’ 를 전달하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
|
|
그런데 이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에서 경찰청은 대통령실과의 핫라인 통화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어요.🤔 핫라인 전화에 녹음 기능이 없다는 이유였는데요. 물론 경찰과 해경이 다른 조직이긴 하지만, 9년 전에도 있었던 핫라인 녹음 기능이 지금 없다는 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죠.😰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세월호 참사 2개월 후인 2014년 6월부터, 해경이 대통령실 핫라인을 포함해 사실상 모든 교신과 통신 기록을 중단했다는 사실입니다. 해경 측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기록을 하지 않는다’ 라고 해명했는데요. 일반인도 아닌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에서, 더군다나 비상 상황에 사용하는 통신 기록을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중단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상의 사실을 종합하면, 세월호 참사 당시 통신 기록이 문제가 되자 해경이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통신 기록을 중단한 것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경찰 역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통신 기록을 중단했거나 아예 녹음 기능을 삭제했을 수도 있겠죠. 만약 이 의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9년 전 세월호 참사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걸까요. |
|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8년… 같은 고통 반복하지 않으려면
작년 9월 발간됐던 세월호 참사 종합보고서의 결론부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국가는 구조에는 한없이 무능하다가도 책임 회피와 여론 조작에는 놀랄 만큼 유능했다.” “책임자를 위한 보고는 많았지만 책임 있는 조치는 없었다.” “무책임은 조직적이었고 책임 방기는 집단적이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편법을 저질렀고,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 진상규명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기도 했어요. 국가가 나서서 진실을 은폐하자 가려진 진실의 틈새로 온갖 억측과 음모론이 자라났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곧 여야간의 진영 다툼으로 번졌고, 국민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부추겼습니다. 끝없는 다툼 속에서 진실은 더욱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결국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2014년부터 작년까지 8년이나 계속됐고, 아직까지도 유가족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보면, 세월호 참사 당시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교묘하게 책임을 피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9년 전보다 더 발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참사를 극복하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은 거꾸로 9년 전보다 더 멀어진 셈이죠.😰
이태원 참사 이후 경찰 특수본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가 마무리됐지만, 그 결과물은 아직 국민들과 유가족들이 바라는 진상 규명 수준에 턱없이 부족합니다.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통해 독립된 진상규명 기구를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책임 회피보다는 철저한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는 윤석열 정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
|
🥙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기사로 한 입에 쏙! |
|
|
📅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 제2기 교육생을 찾습니다 |
|
|
세계 최초의 독립언론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뉴스타파저널리즘스쿨(약칭 뉴스쿨)’이 언론판을 함께 바꿔나갈 제 2기 교육생을 찾습니다. 뉴스쿨은 교육-실무-창업 3단계 통합 프로그램으로 기존의 저널리즘스쿨과는 다른 커리큘럼으로 운영합니다. 뉴스쿨은 교육목적은 ‘좋은 기자’ 양성을 뛰어넘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 창업입니다.
‘뉴스쿨’은 현재 우리 사회 언론환경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현직 언론인과 예비 언론인들을 두루 환영합니다. 뉴스타파의 지난 10년 독립언론 노하우를 공유하겠습니다. ‘독립언론 100개 만들기 프로젝트’, ‘뉴스쿨’과 함께 하고 싶은 분들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지원자격
- 나이와 학력 제한 없음
- 모든 수업에 참석할 수 있는 분
주요강좌 및 과정
- 탐사보도와 데이터저널리즘 이론과 실기
- 펠로우 과정을 통한 탐사보도 실무
- 독립언론 스타트업 솔루션, 창업 인큐베이팅
선발과정
전형일자
- 서류 접수 기간: 2월 6일 ~ 3월 5일
- 면접 전형: 3월 16일 ~ 3월 17일 (예정)
- 합격자 발표: 3월 20일
- 첫 수업 시작일 : 4월 1일
자세한 모집공고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세요.
👉모집공고 바로가기: https://withnewstapa.org/2023/02/01/202302011 |
|
|
안녕하세요! 뉴스레터 ‘타파스’를 만들고 있는 현PD😎입니다. 더 나은 타파스를 만들기 위한 의견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이번 주도 타파스와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
|
뉴스타파는 광고와 협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제작·운영됩니다. 99% 시민을 위한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후원회원이 되어 주세요. |
|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12-13(04625)
ⓒ The Korea center for investigative journalism, All Rights Reserved.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