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일어난지 약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는 참사를 둘러싼 여러 논쟁과 갈등이 있었어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공직자들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고, 희생자 명단 공개를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또 국정조사 여부를 두고 여야간 신경전을 벌인 끝에 간신히 어제(24일)부터 국정조사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논쟁 과정에서 빠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목소리입니다. 유가족들은 참사 발생 이후 한 달 가까이 공식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았어요.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이 2주만에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기자회견을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상황입니다.
그리고 지난 11월 22일, 처음으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태원 참사는 총체적인 안전불감증에 의한 간접 살인이었습니다” “정부는 유족들의 요구를 더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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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2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민아 씨의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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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기자회견에는 수십 명의 유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전체 희생자 수인 158명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죠. 하지만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렇게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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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치권 태도와 2차 가해, 유가족 아픔 키워
1998년 태어난 이지한 씨는 웹드라마 등 활동으로 주목받는 배우였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2>에 등장해 인기를 얻기도 했고, 내년에 방영될 지상파 드라마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월 29일, 지인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이지한 씨는 참사에 휘말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지한 씨의 어머니는 가장 먼저 공개적인 목소리를 낸 유가족들 중 한 명입니다. 아버지 역시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 발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지난 22일 유가족 기자회견에 함께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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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의 어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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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기자회견 이후 이지한 씨의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더해 정부와 정치권의 태도, 2차 가해 등이 유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기자회견 하루 전인 21일, 몇몇 유가족들과 함께 여당인 국민의힘의 정진석 비대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여당의 대표자에게 책임 있는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간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만난 의원들은 실망스러운 태도를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아래와 같이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하고 갔지만 실망을 많이 했고, (국민의힘) 어떤 분은 졸고 계셨고요. 어떤 분은 휴대폰을 하시는데… 저희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정부 쪽하고 얘기 좀 해오지 않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야당 대표나 다른 사람들 잡아넣을 생각만 하고, 참사 희생자 가족 도와주려고 하시는 분들 도와주지 못하게 왕따시키고, 너무 정치적인 문제로만 끌고 가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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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지한 씨의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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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치인들의 태도와 함께, 인터넷에 떠도는 루머와 2차 가해도 유가족들을 움츠러들게 만들었습니다. “사고를 당해도 싸다”, “애도할 가치가 없다”라는 등 피해자들을 비난하는 말들이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지금 유가족들이 가장 나서기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댓글, 2차 가해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이현지(가명) 씨는 이러한 2차 가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억울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애도할 가치가 없다는 사람이 있는데, 당장 축제를 홍보하잖아요. 거기에서 안전이 지켜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왜 축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잘못이 돼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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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보다 ‘돈’ 부터 꺼낸 정부… 2차 가해 키웠다
이렇듯 2차 가해를 일삼는 사람들이 무기로 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돈’입니다. 참사 직후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2천만 원의 위로금과 장례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희생자들에 대한 부당한 특혜라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 10월 31일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국민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라는 국회 국민청원이 올라와 5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닌 ‘진심어린 사과와 진상규명’ 입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지원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가 유가족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참사의 책임을 희생자 개인에게 돌리는 한편, 세금으로 위로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해 유가족들이 부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지난 22일 유가족 기자회견 이후, 정부는 곧바로 배상금 지급을 위해 특별법 제정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는 이와 같은 정부의 태도가 2차 가해를 강화하지 않을지 아래와 같이 우려를 표했습니다.
“얘들(정부)이 자꾸 배상금 얘기한다고 하니까, 제가 그랬죠. ‘이거 뇌물이다’ 라고요. 정부에서 희생자 유가족분들한테 뇌물을 먹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뇌물 줄 테니까, 돈 줄 테니까, 이 돈 가지고 어디 저기 가서 찌그러져 있어라,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라고 생각됩니다. 또 보상금 얘기를 하게 되면 ‘거 봐라, 결국에는 돈 아니냐’ 하는 댓글이 난무할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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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정부가 유족들이 서로 만나지 못하게 방해했다”
그렇다면 지금 유가족들이 바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지한 씨의 아버지를 비롯해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유가족들은 바로 ‘서로 만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지한 씨 아버지는 정부가 유가족들을 방치했고, 또 서로 만나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말합니다.
“우리 아들하고 같이 갔던 사람들 한번 만나보고 싶다 해 가지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경찰서라든가 이런 데는, 관공서에서는 절대 안 가르쳐주더군요. 안 된답니다. 다른 가족분들 연락처를 알 수 없었어요. 유가족들 지금 (제가 만난) 40 가족 전부 다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방치를 했고 만나지 못하게 하는 공작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주장에 대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자 4·16 안전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장훈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못된 걸 학습했다” 라고 말합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유가족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부에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아예 유가족들이 만나지 못하도록 흩어놓고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결국 유가족들은 참사 약 한 달 만에 한데 모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참사 희생자 이민아 씨의 아버지는 “유족들이 무슨 반정부 세력이라도 됩니까. 장례비와 위로금은 그렇게 빨리 지급하면서 정작 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유족들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왜 참사 24일이 넘도록 안 해주는 겁니까” 라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뉴스타파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이지한 씨의 아버지는 “우리 다 같이 합시다. 그래야 우리가 잊혀지지 않고 정부에서 우리 목소리를 듣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지한 씨 아버지의 말처럼 정부는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또 유가족들이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요. 뉴스타파는 앞으로도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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